두고 떠나기

생각

두고 떠나기

2023.02.13

장소에도 정이 든다. 내가 머물던 곳은 당시에 내가 하던 감정과 생각, 당시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전시해둔다. 고등학교 때 자주 다니던 제주도의 탑동과 18살에 학교를 자퇴하고 우연히 흘러들어가 살았던 대전이 그런 곳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. 시간이 날 때면, 나는 그런 곳들을 다시 방문하는 걸 좋아하는데, 보다 미숙했던 시절의 나에 대한 조소나 그때의 감정에 대한 상기와 함께 묘한 향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. 당시 더디게 흐르던 시간에 대한 요약 노트를 빠르게 훑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.

내가 앞으로 살아가며 내 일생의 부분을 간직하는 장소는 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. 그리고 이 곳도 그중 하나가 되어주겠지. 떠날 준비를 하는 지금, 이곳에 처음 올 때 느꼈던 감정과 순간을 기억하며 괜히 자주 가던 식당과 장소를 누비고는 한다. 사람을 떠나게 될 때와 같이, 정든 장소에 내가 차지하던 물리적 공간을 비워두는 것도 마음이 아프고 섭섭하고 그렇다. 하염없이 부족했던 나를 품어줘서, 멋진 사람들과 지낼 수 있는 배경이 되어줘서 고맙다.

최근 글

← Back to posts
제목카테고리날짜
이별생각2025.11.25
두고 떠나기생각2023.02.13